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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현대사로 보는 구냉전 종식과 신냉전ㅡ1시사*이슈/우크라이나 전쟁 2023. 2. 27. 12:24반응형
1. 냉전 시기
냉전은 수십 년간 지속된 정치적, 이념적, 군사적 갈등으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일어났다.
냉전은 1947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시작되었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비록 두 초강대국 사이에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은 없었지만, 그 갈등은 팽팽한 경쟁, 수많은 대리 전쟁, 그리고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군비 경쟁으로 특징지어졌다.
냉전의 기원은 두 초강대국 사이의 이념적 차이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모델을 대표하는 미국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헌신했다. 공산주의 모델을 대표하는 소련은 이념 확산과 사회주의 사회 구축에 전념했다.
미국과 소련은 초강대국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각자의 동맹국들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대리전을 벌였다.
이러한 대리 전쟁들로는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이 있다.
냉전은 또한 양측이 핵무기를 포함한 점점 더 발전된 무기와 기술을 개발하면서 상당한 군비 경쟁을 수반했다. 핵무기 개발과 두 강대국 간의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핵 대치"로 알려진 긴장과 불안정이 고조된 시기로 이어졌다.
1991년 끝나지 않을 거 같았던 냉전이 소련의 붕괴와 함께 종식되었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국제 관계를 규정해온 길고 긴 긴장된 갈등의 끝을 의미했다.
허나 냉전의 잔재는 사라지지 않았고 신냉전의 포문을 열었다. 이를 구냉전 종식 이후 우크라이나 현대사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우크라이나 독립
1991년 3월 17일
소련 건국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인 국민투표가 시행된다. 주제는 소비에트 연방 존속에 관한 내용이었다.
위 표는 소련이 존속해야 한다고 찬성을 던진 국가들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 해체가 기정사실화 되자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우크라이나 독립은 단순히 소련이 붕괴하면서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 소련의 억압에 벗어나 자유를 얻고 우크라이나인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 있었다.
우크라니아 작가 연방으로 대표되는 우크라이나의 지식인들은 원래는 공산당의 지시를 따랐다. 그러나 1986년에 거의 1,100명에 달하는 회원이 참석한 회의를 개최고, 이후부터는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 때부터 작가 연합은 우크라이나 문화와 언어의 재탄생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추진은 자국어 사회의 창설을 장려함으로써, 스탈린과 브레즈네프 시대 이후에 억압되었던 작가들을 대중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복권했다.
그리고 수십 년동안 공개 토론이 금지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공개적으로 말한 새로운 작품을 출판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점차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련인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쇼프 시절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소련에 존속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유역과 체르보노흐라드의 광부들이 1989년 7월에 파업에 들어갔지만 고르바초프에게 반대하기보다는 함께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파업을 했다.
1990년 10월 키이우에서 학생들이 2주간의 시위를 벌였지만 우크라이나 총리가 교체되자마자 시위가 끝났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소련의 다른 공화국과 비교하면 우크라이나는 전반전으로 "혼란의 바다에서 정말로 안정된 섬"이었다.
소비에트 정부가 1991년 3월에 연방 유지에 대한 지지를 측정하기 위해 소련에 전국적인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이 국민투표는 어떤 종류던 간에 소련에서 유일하게 대중들에게 국민투표가 실시된 유일한 경우였다.
우크라이나의 대다수 유권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새로운 연방으로 유지" 찬성에 투표했다.
그러나 이는 기존 소비에트 연방을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라는 민족성과 정체성을 보장 받고 우크라이나 주권이 보장된 새로운 연방에 대한 찬성표였다.
1991년 8월에 모스크바에서 쿠데타가 터지면서 180도 바뀌게 된다.
8월 쿠데타가 끝난 후 여러 연방국들이 완전한 독립을 원하게 되었고 소련에서 빠져나갔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연방이 아니라 완전한 독립을 원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독립 선언에 대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 평의회 결의안
[Resolution of the Supreme Soviet of the Ukrainian SSR on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Ukraine]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최고 회의에서 내린 결정:
1991년 9월 24일에 우크라이나를 독립된 민주주의 국가로 선언한다.
독립을 선언한 순간부터 오직 우크라이나 헌법, 그 법률, 정부의 결의 및 이 공화국의 기타 입법 행위만이 이 국가의 영토에서 유효하다.
1991년 12월 1일에 독립 선언서 확정에 대한 공화국의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L. 크라우추크,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 평의회 의장
1991년 8월 24일 키이우Kiev
우크라이나 독립 선언의 법률 Act of Ukraine's Independence Declaration
1991년 8월 19일 소련USSR 쿠데타로 발생한, 우크라이나를 위협한 치명적인 위험에 대한 조치:
- 우크라이나 국가 형성의 수백년 정통을 발전시키는 것;
- 유엔 헌장 및 기타 국제 법률 문서에 의해 구상된 자결권으로 조치하는 것;
-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최고 소비에트는 우크라이나의 국가 주권 선언에 따라 행동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크라이나 독립 그리고 우크라이나인의 주권 국가―우크라이나를 형성한다.
우크라이나의 영토는 필수적이며 침범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오직 이 헌법과 법률만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적용된다.
이 법률은 승인된 순간부터 시행한다.
우크라이나 최고 평의회The Supreme Soviet of Ukraine
1991년 8월 24일
SOURCE: News from Ukraine (Kiev), September 1991, p.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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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직후 고르바쇼프와 옐친은 끈질기게 우크라이나 독립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출판사 종이 공급을 줄여 독립 여론을 줄이고 반대로 소련 보존을 촉구하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렸다.
그 뿐만 아니라 소련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군대에 대한 전투 태세 점검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마지막 순간, 시위 덕분에 점검은 현장의 대규모 군사 기동 훈련 없이 수행됐다.
이러한 소련의 행동은 오히려 우크라이나 독립을 더욱 부추겼다. 소련 아래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보존할 수 없을 것이고 억압 받던 과거가 쭉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러시아의 경제 상황 특히 대도시의 식량 부족도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고통에서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격리시킬 수 있다는 방법으로 강력하게 상기시킨 건 독립이었다. 독립한 우크라이나만이 국민들의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압도적인 찬성 끝에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게 된다.
1991년 12월 8일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3국 지도자들은 벨로베즈스카야 숲에 모여 벨로베즈스카야 조약을 통해 소련의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S)의 창설을 결의했고, 대세를 막을 수 없게 되자 12월 25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에서 사임했으며, 다음날 소련 최고회의는 142-N호 선언을 통해 이를 인준하였다.
이렇게 1922년 12월 30일에 건국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68년 11개월 26일만에 해체되었다.
이로서 소련은 완전히 붕괴하게 되었고 구냉전은 종식한다.
하지만 냉전의 잔재들이 남아있었으니 이는 독립한 이후 우크라이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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