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 황금거북의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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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하수
    수필 2019. 1. 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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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홋카이도에 지진이 나면서 정전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보였다고..


    증조할머니가 살아 있을 적, 증조할머니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증조할머니 집은 전기도 없는 산속에 있었다. 음.. 있었는데 가로등이 없었나? 아주 어릴 적이라 기억이 흐릿하다. 하지만 하늘을 보니 은하수가 보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하늘에 뿌려져 있었다. 누군가 손이 미끄러져 실수로 김에다가 소금을 부은 모습 같았다. 한참 동안 하늘을 봤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자주 본 풍경이라고 말했다. 이런 하늘을 자주 봤다니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증조할머니 집에서 살면 안 되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 안 난다. 밤늦게까지 밤하늘을 구경한 기억만이 남아있다.

    별 한두 개만 보이는 심심한 밤하늘을 볼 때면 어릴 적에 본 은하수가 기억에서 흐릿해질 법도 하다. 하지만 그때 본 은하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기는커녕 더 밝아져만 갔다.

    버킷리스트에 은하수 보는 걸 적어봤다.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고 책도 보고 그랬다. 머릿속에서만 수 백 번 은하수를 보는 계획을 세운 것 같다. 그렇게 계획만 세우고 지키지는 못했다. 시간이 흘러 군대에 입대했다.

    탄약고 근무 가는 길에 가로등이 전혀 없는 곳이 있다. 코앞이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컴컴한데 그곳에서 하늘을 보면 어느 곳보다도 빛나고 있다. 딱 위 사진과 똑같다. 땅은 어두운데 오히려 하늘은 밝아졌다. GOP에 가면 철조망 너머로는 조명 때문에 밝아서 별이 안 보이지만 조명이 하나도 없는 뒤쪽에는 별이 많이 보인다. 매번 야간 근무 갈 때마다 밤하늘을 본다. 후임들은 매일 보는 풍경이 질리지 않냐고 묻는다. 나는 이 밤하늘이 어떻게 질리냐고 되묻는다. 사실 피곤해서 빨리 가자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피곤해서 빨리 복귀하고 싶건만 선임인 내가 밤하늘을 본다고 천천히 걸으니 짜증이 날법도 하다. 민폐 끼치는 걸 알면서도 밤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천천히 걸어간다.

    4개월 뒤에 전역하면 보기 힘든 풍경이다.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야지.

    가장 가기 싫어했던 곳이 군대였는데 가장 보고 싶은 풍경이 군대에 있었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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